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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은 세계 정상에 있는 나라의 도시답게 아주 깨끗한 느낌이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독일은 왠지 모르게 캐나다와 비슷할것 같았고, 이런 기분때문인지 오래있기 싫었다. 그러나 도착하고 도시를 알아가기 시작하자 나의 마음은 단숨에 바껴 버렸다. 베를린, 즐거움과 슬픔이 공존하는 도시가 아닐까 싶다.

Brief History of Berlin:
Well, I'm not much of History guy but noone can really talk about Berlin without going into history. So, basically we all know Hitler took over and did lots of bad things to minorities, most famously to the Jews. Once Germany lost, the U.S., the U.S.S.R., France, and the U.K. took the land. West side was taken by the soviets and the eastern side was divided equally to the remaining three countries. Berlin, being a capital, was popular and everyone wanted piece of it. Although it is geographically located in the soviet part, they divided it in half again. Western Berlin was placed with the democratic government while the Eastern Berlin was governed by the communism. For the first couple years people freely travelled between the two parts of the city but the soviet realized they are losing young and skilled people to Western Germany. What did they do? Showed some German efficiency and built a wall around Western Germany in 5 hours so no one from Eastern Berlin or Germany can go into it to escape to Western Germany. So they were divided but eventually as we all know, they re-united.

베를린은 분단되어있던 도시였기에 서쪽과 동쪽은 여전히 분단되어있는 느낌을 들게 했다. 서쪽은 자본주의가 일찍히 들어와 우리에게는 조금도 친숙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서쪽은 공산주의 느낌의 광장, 건물들, 집들이 기다린다. 하지만 이제는 그 모든걸 떨쳐내고 Germania가 아닌 Germany로 세계의 Top 5에 들어가는 강대국의 수도인 만큼 위용을 뽐낼만한 많은 attraction들로 가득찬 있었다. 자, 그럼 기억에 많이 남는 곳으로 가보자.

Memorial for Jewish of Europe
독일인들은 자신들이 세계2차대전에 얼마나 많이 나쁜짓을 많이 했는지 기억하고 알고 있다. 어떻게 보면 그들의 자손들이 그 부모세대 그리고 그 윗세대때문에 계속 죄책감에 살아야된다는게 아이로닉하기도 하다. 세계2차대전 당시 나치군의 유대인 학살은 인종차별의 대표적인 일이기에 현 독일은 사죄와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기에 독일에 가장 비싼 장소 한 블럭 전체를 사들여 메모리얼을 만들었다. 추상적인 새까만 돌들이 - 모두 다른 높이와 다른 크기로 일렬로 정렬되어 있는 - 한 블럭 전체를 감싸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것도 베를린의 가장 중요한 장소에, 이것들이 뭘 뜻하는지 누구나 자연스럽게 궁금증에 시달리게 된다. 돌들은 유대인의 무덤을 표현하고 2차대전 당시 한 무덤에 시체 여러구를 함께 쌓아서 높이 쌓여있는 모습을 표현하기 위에 다른 높이의 돌들이 정렬되어 끝없이 나열되어 있는것이다. 이 모습을 보고 서있으면 유대인들의 겪은 고통이 내 가슴속에서도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유대인들은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길래 역사적으로 늘 인종차별의 표적이 되었는지 궁금하게 만들었으나 아직도 답을 찾지는 못하였다. 나의 짧은 지식이 아는것은 유대인은 하나님한테 선택 받은 종족이고 주다이즘을 믿는다는것 밖에는. 관광을 하면서 배운것이지만 나치당은 유대인 정의를 내릴때 1/8이상 유대인이면 유대인이라고 내렸다는 것이다. 4명의 할아버지 할머니중 단 한명이라도 유대인이였다면 예외없이 나치당의 표적이 되었다는것.. 그들의 죽음이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는걸 잊으면 안될것 같다.







베를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것은 개선문이 아닐까 싶다. 비록 멋있고 웅장하지만 나에게는 크게 다가오지 않았다. 오히려 나에게는 그 바로 앞에 있던 베를린 장벽의 흔적이였다.
위에사 말했듯이 베를린 장벽은 단 5시간만에 새워졌다. 그랬기에 많은 가족들이 분단되었고 많은 이들이 일자리를 하루아침에 잃었다. 대한민국을 반으로 나누고 있는 38선처럼 말이다. 그들이 장벽을 부시는날, 아주 재밌는 하지만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났다. 동독인의 자유 여행이 공식적으로 허가가 되고 몇시간후에 이것을 발표하기 되는데, 발표자가 실수로 "지금 당장부터 허가된다" 라고 발표된것이다. 사실상으로는 2-3일 후쯤 준비가 되면 서독과 동독 사이의 벽을 허물 예정이였다. 이 발표는 티비를 통해서 서독 동독 모든 국민에게 나가서 순식간에 동독의 모든 사람들은 벽으로 나가게 된다. 아직 이 소식을 들었을리 없는 군인들은 주민들을 몇시간동안이나 막게 된다. 그러나 점점더 많은 동독 시민들이 모이자 결국 문을 열게되고 대부분의 서독시민들은 비자도 받지 않은체 허가도 받지 않은체 동독으로 가게된다. 정말 어처구니 없는 실수가 아닌가 싶다. 선의의 실수였을지도 모른다ㅋㅋㅋㅋ



사실 독일은 이외에도 너무나 본것이 많다. 빅토리아 여신상, 세계 시계, 동쪽 장벽 겔러리 등등. 하지만 독일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건 아마 술과 음식이 아닐까? 물보다 싼 맥주, 맥주와 어울리는 소세지. 때 마침 베를린에서 일하는 동생이 있어서 더욱더 재밌게 놀수 있었던것 같다. 지하철에서 독어를 가르쳐준 아주머님, 술마시다 이야기하게된 독일 아저씨와 가족. 여행에는 역사, 건물, 박물관 등 많은게 있지만 역시 제일 기억이 남는것은 사람과 음식, 언어가 아닐까 싶다. 이렇게 3일이란 시간을 베를린에서 보낸 우리는 나의 귀여운 동생과 함께 4일간을 프라하에서 보내기 위해 기차를 탄다. 가는길에 독일의 피란체, 드레드센은 정말 꿈같았다.









마이클 젝슨과 애기이야기가 일어난 호텔.


아직까지 남아서 역사를 말해주는 장벽


동독이 지었던 티비타워.


세계 시계안에 평양.


베를린의 석양.



드레드신은 독일 동남쪽에 작은 도시로 로마시절 로마의 건축가, 예술가들이 와서 만들어낸 도시다. 그렇기 때문에 독일의 피란체라고 불린다. 르네상스 스타일의 건물등이 너무나 아름다운 이 도시! 반나절의 짧은 여행있지만 이탈리에 가기전에 약간의 preview를 본듯한 느낌이였다. 이 도시에서 인간의 창의력과 아름다움을 흠뻑 느끼게 되고 정말 인간의 대단함을 다시한번 느꼈다.








드레드센에서 반나절을 보낸 우리는 체코 프라하로 이동했다. 하루종일 걸어다닌 탓에 피곤했지만 기차안에서 바라보는 풍경을 즐기느라 정신없었던것 같다. 체코로 들어가자 산이 보이고 계곡이 보이고 왠지 모르게 내가 자란 충주와 너무나 비슷했다. 마침내 프라하 역에 도착하였다. 이미 어둠으로 덮여 있었고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음산한 분위기와 무서운 분위기, 아직도 공화국같은 느낌이 나를 엄습했다. 프라하의 첫인상은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정 반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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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n Y.B. Kim 2011/07/20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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